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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지식들/역사와 인문학

을지로 가볼만한 곳, 힙지로 맞벽 건물들: 왜 건물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을까?

by 히동동이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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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을지로 가볼 만한 곳, 을지로에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자투리 잡지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힙지로'라고도 불립니다. 옛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펍, 바, 맛있는 식당과 카페가 생겨나면서 레트로 감성 덕분에 힙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을지로에는 건물들이 특이하게 서 있습니다. 옹기종기 건물들끼리 아주 바짝 붙어있는 상태로 지어졌습니다. 사진과 함께 같이 살펴보고,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간단한 이유도 알려드리겠습니다.

 

 

힙지로 을지로 옹기종기 모인 '맞벽 건축' 건물들

 

을지로2가-맞벽-건물
을지로 2가

 

어제 친구와 함께 을지로를 다녀오면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시청에서부터 을지로 3가 '힙지로 골목'까지 같이 걸어가던 중 찍었습니다. 을지로는 종로와 함께 평행하게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도로입니다. 종로에 비하면 도로 폭도 좁고 주변 상권도 훌륭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도로입니다.

혹시 을지로의 지명 유래가 어떤지 아시나요? '을지'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신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종로야 뭐, 옛날에 임금과 조상들의 혼을 모신 '종묘'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종로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지만, 을지로, 충무로 등은 왜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힌트만 알려드릴게요. 을지문덕과 이순신입니다. 😊 간단하면서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

을지로-충무로-지명-유래

 

 

어쨌든 일직선으로 쭉 뻗은 을지로의 큰길을 걷다 보면, 다른 동네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보통 을지로가 다른 동네와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금속, 유리, 철물점, 벽지 등을 파는 공장이나 가게가 많아서
  • 도로 폭이 좁고 빽빽해서
  • 건물들의 높이가 일정하고, 빼곡하게 붙어 있어서

 

을지로-맞벽-건축물

 

을지로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건물입니다. 을지로는 건물들의 높이가 일정하고, 모두 빼곡하게 바짝 붙어서 서있습니다. 건물주끼리 약속이라도 한 듯 건물들의 높이가 일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층은 같아도 천장 높이가 다르거나 설계 방식이 다르면 높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저 정도로 건물 높이가 같다는 것은 설계 방식도 동일하다는 것이거든요.

위와 같은 건축 양식을 바로 '맞벽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건물끼리 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틈이 아예 없습니다. 있더라도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되지 못합니다. 을지로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요? 이렇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맞벽-건물-근접
맞벽 건물 근접 사진

 

 


힙지로 을지로 맞벽 건축물들이 지어진 이유: 있어 보이려고.

 

을지로-맞벽-건물들
을지로 맞벽 건물들

 

힙지로, 을지로에 맞벽 건물들이 이렇게 빼곡하게 을지로 입구부터 을지로 5가까지 일렬로 서 있는 이유는 정말 간단합니다. '있어 보이려고' 만든 겁니다.

1950~1960년대에 을지로 종합 개발 계획 당시에, 을지로를 '있어 보이게' 만들고 싶었던 정부의 욕심 때문입니다. 공식적인 표현으로는 '을지로 재개발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말하면 간단합니다. 그냥 있어 보이게 을지로를 꾸미고 싶었던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중요한 건, 관점을 바꾸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이미지처럼 을지로 뒤에 지어진 초고층 빌딩과 비교하면 당연히 을지로 맞벽 건물들은 낡고 허름하고 구시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1950년, 1960년대 당시의 상황과 비교를 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1960~1970년에 경제개발계획으로 아주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성장한 나라가 전혀 없습니다.

그 말은 달리 말하면, 1950년, 1960년 초반에는 '나라 꼴'도 유지하지 못했다는 뜻이 됩니다. 1950년 초에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일본으로부터 광복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나라 꼴이 못 봐줄 만하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정말입니다. 1950년, 1960년에도 우리나라는 초가집에서 살았어요. 불과 50~60년 전에 초가집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나마 서울 근처만 초가집은 너무 못 사는 나라 같다면서 기와집이나 판잣집 위주로 개발이 되었습니다.

 

1960년-한국-시장
1960년 초 한국 시장 모습
1960년-서울
1960년 초 서울

 

어마어마하지요? 뒤에 벽돌 건물들이 보이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관공서입니다. 일제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서울에 사는 일반 국민들은 기와집, 판잣집에서 살았고, 이미지처럼 천막을 여러 개 덧대어 지붕을 만든 조악한 집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현대복과 개량 한복이 혼재하는 풍경입니다. 이런 시기에 독립하고, 막 한국 전쟁이 끝난 뒤였으니, 정부와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외국에서 봤을 때 그래도 좀 그럴듯해 보이는 도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요.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을지로입니다.

 

을지로-풍경
을지로 풍경

 

1960년 당시, 을지로의 저 맞벽 건물들 뒤편에는 지금처럼 현대 고층 건물이 아니라 죄다 초가집, 판잣집이 있었습니다. 외국인이나 다른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놀러왔을 때, 을지로를 걷다 보면 건물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초가집과 판잣집이 보기 좋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도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예 건물 뒤쪽이 보이지 않게 맞벽 양식으로 빼곡하게 일렬로 지어놓은 것입니다.

대신 맞벽 건물은 화재가 나면 연속적으로 건물들끼리 불이 옮겨 붙어 큰 화재로 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드시 맞대고 있는 벽은 방염 소재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덕분에 1960년 대 당시에는 을지로가 참 현대적이고 멋진 도시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지금처럼 한국이 고도 성장을 이루고 초고층 건물들이 많이 생긴 시점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을지로는 참 아까운 땅이 되었습니다. 이제 역으로 서울 한복판에 별로 보기 싫은 동네가 생긴 것이지요. 저 지역을 모두 허물고 초고층 건물을 세워서 재개발을 하면 얼마나 돈이 되는 장사겠습니까?

을지로에 맞벽 건물들이 세워진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때요? 정말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저는 이런 이야기가 참 재미있고 좋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부디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잡지식도 알아두면 나중에 을지로, 힙지로에 놀러 갔을 때 구경할 수 있는 것, 같이 간 연인이나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아는 척, 똑똑한 척하기도 딱 좋은 이야기입니다. 😊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을지로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고, 이외에도 저의 유익한 포스팅을 공유해드리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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