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흥미로운 지식들/뜻과 의미와 유래

서울 사대문 인의예지신 (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보신각), 왜 숙정문만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by 히동동이 2023. 2. 16.
반응형

오늘은 조선의 옛 도읍이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사대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단어가 담긴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보신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왜 북대문 숙정문은 이름에 '지'라는 단어가 없을까요? 동대문은 흥인지문으로 이름에 '인'이 들어갑니다. 서대문은 돈의문으로 이름에 '의'가 들어갑니다. 남대문은 숭례문으로 이름에 '예'가 들어갑니다. 보신각에도 '신'자가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쉽고 재미있게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서울 사대문 이름에 담긴 '인의예지신'

 

'한양'은 서울의 옛 지명입니다. 조선이 수도로 삼았던 곳입니다. 광화문과 경복궁에서는 조선의 임금이 대대로 살며 정사를 돌보았습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4개의 문과 성곽이 서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아는 서울의 사대문입니다.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지금은 없어짐),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정문이 있습니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입니다. 무신 세력들을 이끌고,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았습니다. 고려의 32대 왕이었던 우왕은 이성계에게 명나라를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왜냐하면 고려는 몽골의 칭기즈칸이 세계를 제패하고, 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세웠던 원나라에게 침략을 받고 속국(신하의 나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원나라는 쇠퇴하고, 새로운 명나라가 중국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원나라의 속국이었던 고려가 명나라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성계는 우왕의 명령대로 군사를 이끌고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다가, 압록강 인근의 위화도에서 마음을 바꾸고 군대를 돌려 고려로 돌아갔습니다. 그 길로 이성계는 우왕을 폐위시키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내버렸습니다. 33대 왕으로 창왕을 즉위시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폐위시켰습니다. 마지막 고려의 34대 왕 공양왕을 즉위시켰지만, 역시 폐위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진 사대부들과 손을 잡고 지금의 서울 강북 지역에서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고려는 불교를 숭상하던 나라였기에, 조선은 고려와는 다른 노선으로 걸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침 유교 학문을 공부하던 신진사대부들과 손을 잡았으니, 조선의 국교는 유교가 되었습니다. 공자가 만들고 맹자가 쌓아 올린 그 유교가 조선의 건국 이념이 되었습니다.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맹자의 유교 가르침 중에는 '오상(五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항상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도리라는 뜻입니다. 그게 바로 '인의예지신'입니다.

  • 인(仁) 어질 인: 사람은 항상 어질고 끈기 있게 살아야 한다.
  • 의(義) 옳을 의: 사람은 항상 의롭게 살아야 한다.
  • 예(禮) 예절 예: 사람은 항상 예의 바르게 살아야 한다.
  • 지(智) 지혜 지: 사람은 항상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 신(信) 믿을 신: 사람은 항상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맹자에 따르면 이 5가지 덕목 중 으뜸은 '인'입니다. 인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4개는 인의 하위 호환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은 공자와 맹자의 유교 사상을 따르는 나라였기 때문에 수도를 지키는 사대문과 보신각에 인의예지신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왜 북대문 숙정문은 이름에 '지'가 없을까?

 

서울-사대문-숙정문
서울 사대문 숙정문

 

동대문에 흥지문, 서대문에 돈문, 남대문에 숭문, 중앙에 보각까지 인, 의, 예, 신은 제 자리를 잘 찾았습니다. 하지만 북대문은 왜 '숙지문'이 아니고 '숙정문'이 되었을까요?

 

 

  이유는 조선이 철저한 신분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 사회였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임금이 있습니다. 그 밑으로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과 육조 판서들이 있었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무신들은 문신에 비해 조금 천대받았습니다. 그 밑으로 양반 가문과 선비들이 있었습니다. 뒤이어 농사를 짓는 농민 계급이 있었고, 장사를 하는 상민 계급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첩의 아들인 '서얼'과 노비 계급과 도축을 하는 백정 계급까지, 조선 사회의 신분은 철저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인의예지신'의 '지'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지혜, 지식, 공부, 학문과 같은 키워드는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농민, 상민, 노비, 백정 계급은 함부로 공부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양반과 선비들은 대대손손 신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계급은 항상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유지하고 강화하고 싶어 합니다. 대대손손 자식에게, 손자에게 물려주면서 지배력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맛있는 걸 남에게 뺏기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양반과 선비와 같은 지배 계급들에게는 백성들이 자기 신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반갑고 안전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분에 맞게, 자기 분수에 맞게 잘 살아가라고, 일부러 한자 '지혜로울 지' 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대문은 그래서 '숙지문'이 되지 못했습니다.

📌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라고 불렸습니다. 숙청이라니, 정말 소름이 끼치는 단어입니다. 반대 세력들을 숙청하다, 피의 숙청, 숙청의 날 같은 문장에 사용되는 바로 그 숙청입니다. 숙청문의 뜻은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해요. '숙청문'은 백성들이 지혜로움을 추구하지 말고, 각자의 신분에 맞게 잘 살아가길 바라는 지배 계층의 희망이 완벽하게 반영된 이름이었습니다. 숙청이라는 불길한 단어를 통해 '기어오르면 각오해라'라는 백성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숙정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사대문 1: 동대문 '흥인지문'

 

동대문-흥인지문
동대문 흥인지문

 

흥인지문은 종로 5가에서 조금 더 가면 볼 수 있는 조선의 동쪽 대문입니다. 다섯 가지 덕목 중 가장 으뜸이라고 불리는 '인'이 이름에 들어 있습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흥인지문이 좌청룡, 돈의문이 우백호라고 합니다. 조선의 임금이 경복궁에 앉아 남대문을 바라볼 때, 임금의 왼쪽이 지도상에서는 동쪽이기 때문에, 흥인지문이 좌청룡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사대문들 가운데 흥인지문만 4글자인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으뜸이 되는 '인'이 붙어 있기 때문에 '인'을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동쪽에는 동쪽 지역을 지켜줄만한 큰 산이 없었습니다. 북쪽은 북한산과 북악산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고, 서쪽은 안산이 지켜주고 있고, 남쪽은 한강과 관악산이 지켜주고 있는데 동쪽에는 낮은 언덕 같은 '낙산'뿐이었습니다. 그래서 '之' 자를 보태서 흥인지문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이름에 참 많은 의미 부여를 했지요?

 

 


  나머지 사대문 2: 남대문 '숭례문'

 

남대문-숭례문
남대문 숭례문

 

시청과 서울역의 중간에서 만날 수 있는 숭례문입니다. 숭례문은 대한민국 국보 1호입니다. 오래전 술에 취한 노숙자가 숭례문에서 몰래 취사를 하다가 모조리 타 버리는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로 천천히 복원과 재건 과정을 거쳐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동대문과는 다르게 주변을 걸어 다니며 아주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혼이자 얼과 같은 문화재입니다.

 

 


  나머지 사대문 3: 서대문 '돈의문'

 

서대문-돈의문
서대문 돈의문

 

일제 강점기 때, 도시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돈의문은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길이 생겼다고 해서 돈의문이 있던 자리에 깔린 도로는 '신문로'가 되었습니다. 요즈음 돈의문을 다시 복원하자는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대문역 인근에 가면 돈의문 박물관과 함께, 돈의문의 모습을 증강현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가 증강현실로 돈의문을 다시 복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로를 가로막고 있네요. 만약 돈의문을 복원한다면, 서울 중심 도로를 다시 깔아야 할 텐데 상당히 어려운 계획일 것 같습니다.

 

돈의문-옛날-모습
돈의문 옛날 모습

 


  나머지 사대문 4: 보신각

 

종각-보신각
종각역 보신각

 

 

 


오늘 이렇게 서울 사대문 인의예지신이 담긴 의미와, 북대문 숙정문에는 왜 '지' 자가 들어있지 않은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한낱 건축물의 이름에서조차 자신들의 지배 권력을 뺏기고 싶어 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무척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서울 사대문 중에 숭례문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더 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새로 글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그 외에도 저의 유익한 정보 포스팅을 공유해 드리며, 이상 글을 마치겠습니다.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 차이점. 영주 가볼만한 곳,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2배로 즐기는 법.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 차이점. 영주 가볼만한 곳,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2배로 즐기는

오늘은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더욱 유익하게 즐기는 방법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으로 특히 유명한 절입니다. 하지만 무량수전의 정말 큰 매력은 '

heedoee.tistory.com

 

서울 을지로 충무로 지명 유래 2가지. 이순신과 을지문덕이 상징하는 의미.

 

서울 을지로 충무로 지명 유래 2가지. 이순신과 을지문덕이 상징하는 의미.

오늘은 친구와 서울 핫플레이스 '힙지로'를 돌아다니다가, 을지로 지명, 충무로 지명 유래를 포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을지로 충무로 지명은 여러분도 예상하셨다시피 충무공 이순신 장

heedoee.tistory.com

 

미스터션샤인 고애신 명대사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참 좋소" 구한말 시대상과 실존인물 2명

 

미스터션샤인 고애신 명대사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참 좋소" 구한말 시대상과 실존인물 2명

오늘은 미스터션샤인 고애신이 유진 초이와 함께 걸으며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참 좋소."라고 말했던 장면에 대해서 포스팅해보려고 합니다. 단순히 연모의 정을 품고 있는 유진 초이와 나란히

heedoee.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