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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심리학/자기혐오 극복하기

죽음이 두려운 이유와 두려움을 떨치는 방법. '심슨' 죽음의 5단계?

by 히동동이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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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히도이입니다. 죽음은 두렵지만 그걸 떨치는 방법을 공유합니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분은 없을 것 같아요. 살아있는 그 어떤 생명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은 생명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본능입니다.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필사적인 움직임입니다. 과학기술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해서 우리는 과거보다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죽음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용기가 많을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 자체로도 상품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씩은 가입했을 수많은 보험 상품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누구나 하나씩 가입한 실비보험부터 여행자 보험, 자동차 보험, 입원보험, 암 보험, 생명 보험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상품화했습니다. 요즘은 대중교통을 타다가 다쳐도 보험금을 지급해준다는 대중교통 보험 같은 상품들도 즐비하더군요. 오죽하면 사후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 상조 보험도 성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상조 보험은 죽음을 준비하고자 하는 대비책이어서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포스팅하면서 한 번 언급하겠습니다.)

 


✔ 우리가 죽는 걸 두려워하는 세 가지 이유

 

죽는다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다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내 삶이 너무 소중해서입니다. 죽기엔 내 삶이 너무 가치 있거나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하고 싶은 걸 모두 하고, 이루고 싶은 걸 모두 성취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케이스가 과해진 대표적인 사례가 진시황입니다. 거대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문자도 통일하고, 백성들의 수저 개수까지 모두 통일했던 진시황은 불멸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수은을 마시며 건강을 챙길 수 있다고 믿었고, 북방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아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건축했고,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거대한 군대를 만들고자 병마용갱을 만들었습니다.

병마용

 

2.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집니다. 그 사람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또 보자"며 인사했던 사람을 또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사람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생의 유한함에 덧없음을 느낍니다. 태어나 살아가는 건 순리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죽고 싶지 않고,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미지의 공포심을 느낍니다. 장례식이나 기념비에서 느껴지는 압도되는 기분은 마냥 추모하는 분위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죽음이라고 부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고 만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홀로코스트 기념비

 

3. 남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떠나보내고 슬퍼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를 보여주고 싶지가 않습니다. 내 시신을 정리하고, 장례식을 치르고, 내 유품들을 정리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남은 이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모님, 형제자매, 배우자, 자식들과 손주들, 친구들, 반려 동물들이 내가 죽고 나서 오랫동안 슬픔을 고스란히 가슴속에 품고 살아갈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죽고 마는 내가 무기력하고 싫습니다.

 

 


무서운 건 이해해요. 하지만... 무섭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더욱 두렵게 만듭니다. 우린 모두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멀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 시시각각 죽음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학 기술의 엄청난 발달로 장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해도, '장수'는 결코 '불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끝내 죽어요. 슬프고 무서운 일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만나서 술을 마십니다. 저의 몇 안 되는 술친구예요. 이 친구는 만취하면 울면서 주사를 부립니다.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우는 이유가 한 편으로는 흥겨운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서 웃길 때도 많았습니다. 바로 죽는 게 무섭다고 웁니다. 아직 서른 살인 녀석이 매달 보험비로만 60만 원씩 냅니다. 보험 상품 종류도 가지각색입니다. 실비, 자동차, 입원, 의료, 치아, 종합 암보험. 고루고루 들었습니다. 지난달에는 "상조 보험 하나 들까? 30년 만기에 100% 환급을 해준다는데?"라고 연락이 오는 걸 간신히 말렸습니다. 그만큼 수입이 있는 친구기에 망정입니다. 사람은 왜 죽냐며, 너무 슬프고 불안하다며, 알코올이 들어갈 때마다 훌쩍거립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렇게 울기만 거야? 좋은 건 없어?"

죽는 게 슬픈 거, 불안한 거, 괴로운 거, 두려운 거, 무서운 거. 다 좋아요. 인정하고 공감합니다. 그래서요? 그러면 안 죽기라도 한답니까? 울고 난리 치면 죽음이 뒷걸음치며 미안하다고, 나중에 다시 온다고 하며 떠나간답니까? 그게 핵심입니다. 무서워도 죽음은 다가옵니다. 죽지 않기 위해 관리하고 조심할 수는 있지만 결국 죽는 날이 오리라는, 그리하여 죽음이란 결코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선명한 사실만이 남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고 도망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가올 수밖에 없는 죽음을 계속 생각해야 해요. 끊임없이 기억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 마음속이 죽음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기꺼이 끌어당겨야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고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입니다. 오히려 잘 죽기 위해서 'WELL DYING(웰 다잉)'을 실천해야 합니다.

2022.12.24 - [흥미로운 지식들/이런 뜻, 저런 의미, 그런 유래]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의 뜻과 유래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의 뜻과 유래

안녕하세요, 히도이입니다. 오늘은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와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의 뜻과 유래, 둘의 관계에 대해 포스팅하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카르페 디엠'은 영화 덕분에 널리 알려졌

heedoee.tistory.com

 

 

 


호머 심슨을 통해 보는 <죽음의 5단계>

 

죽음을 직면하는 과정에서 호머 심슨은 순서대로 부정 > 분노 > 공포 > 흥정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5단계에서...

 

'수용'의 과정을 겪습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게 되지."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군요. 사실 이건 호머 심슨의 애니메이션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 Ross)라는 미국의 정신의학자가 만든 '5단계 변화 곡선'을 가지고 죽음에 빗대어 재미있게 풍자한 것입니다.

 

부정, 분노, 공포, 흥정, 수용의 과정이 드러나는 감정 곡선입니다.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기분을 느끼고 부정합니다. 당황스러워서 화가 납니다. 화를 표출합니다. 조금 진정되면서 공포와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봅니다. 흥정하거나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마침내 받아들이고 인정합니다.

 

"ACCEPTANCE." 수용하다. 인정하다. 받아들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계획과 모험을 세우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긍정'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긍정해야 합니다. 언제 죽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유한한 생이 더더욱 소중해집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가 없겠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당장 조금 뒤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호머 심슨처럼 단 24시간의 시간이 남아있다면, 당장 무엇을 하실 건가요?

 

 


✔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 프리드리히 니체-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나 맡겨라.

<니체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자체가 모두 사형수나 마찬가지다.
자살은 이 부조리를 알고 체념하는 것이다.
살아가려면 체념하지 말고 반항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모든 것을 소모하며 살고,
이 해결할 수 없는 부조리와 끝끝내
화해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 알베르 카뮈

 

<위대한 개츠비> 머틀: "영원히 살 것도 아니면서. 영원히 살 것도 아니면서..."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김영민 교수님은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건강하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에 놀라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성심껏 고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포와 허무에 사람들이 괴로워할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침착함을 가지고 나와,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의 내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죽음을 긍정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상조 보험은 바로 그런 부분을 잘 공략한 것 같습니다. 깔끔한 죽음, 걱정 없는 죽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죽음, 대우받는 죽음. '잘 죽는 것 WELL DYING'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유가 된다면야 상조 보험을 가입하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죽는 순간 자체를 고민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실 건가요? 이 유한한 생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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