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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지식들/역사와 인문학

길을 잃기 쉬운 코엑스몰의 단점,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by 히동동이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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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는 코엑스몰은 왜 이렇게 길이 복잡한지 인문학적, 건축학적 접근을 해보는 포스팅입니다.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백만 년 만에 코엑스로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집은 저 머나먼 강북 어딘가에 있어서 송파구의 코엑스는 여행 떠나듯이 마음먹고 출발해야 하는 곳입니다. 다행히 몇 년 전 9호선과 급행선이 개통되고 나서부턴 50분 이내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통되기 전에는 무려 1시간 20분 걸려 도착했던 곳입니다.

코엑스몰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은 이 포스팅의 제목을 한 눈에 이해하고 공감하셨을 것입니다. 코엑스몰에 가보지 않으신 분이나, 갈 예정이 있는 분들도 읽어보시면 좋을만한 포스팅입니다. 코엑스몰은 왜 그렇게 클까요? 왜 이렇게 어지럽고, 복잡하고, 길이 헷갈릴까요? 코엑스몰, 참 흥미로운 곳인 건 맞는데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까요? 저는 서울 시민이라서 그래도 코엑스몰을 몇 번은 방문해본 사람이지만, 갈 때마다 어느 순간 살짝 '이 길이 맞나?' 싶은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만큼 코엑스몰의 면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코엑스몰은 오피셜로 축구장이 스물두 개 이상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면적을 자랑합니다. 봉은사역 7번 출구에서 이어지는 입구에서 도심공항으로 가는 출구까지 부지런히 걸어도 15분이 걸립니다. 요즘은 현대백화점/면세점과 파르나스 타워까지 이어지면서 '코엑스몰 초심자'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공간이 됐습니다.

 


✔ 코엑스몰 리모델링 초기, 전문가들의 우려가 상당했다.

 

위의 사진과 다르게 여러분이 지금 알고 계시는 오늘날의 코엑스몰은 2014년에 리모델링한 모습입니다. 코엑스는 리모델링하면서 기존의 상업시설 이미지를 개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복합 문화 지하공간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이 번지르르하지 사실은 쉽게 말해 '고급화' '차별화'를 하겠다는 뜻이죠. 그 결과 현재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코엑스몰의 모습으로 설계가 되었습니다.

 

말마따나 축구장 22개가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지하공간을 완벽하게 리모델링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당연하게도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김영욱 교수님은 무리해서 고급화 전략을 쓰다 보니 천장이고 바닥이고 기둥이고 모두 흰색 톤을 사용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모든 공간이 전부 한 톤의 색으로 구성되니 마치 '미로'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어요. 두려움, 불안감, 공포심을 주는 공간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방대한 공간은 전부 잘 활용하기엔 상당히 어렵습니다. 도시 구획 설정 및 개발 계획이 수 년씩 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한 톤의 색으로만 구성된 넓은 공간이 얼마나 큰 공포심을 자극하는지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하신 분들은 한 번은 보셨을 것 같습니다. <백 룸>이라는 공포 다큐인데요. 이걸 활용한 게임도 등장했습니다. 건축학 유현준 교수님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셜록 현준>에서 '백 룸'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공포심을 주는 이유로 1. 단일 색감, 2. 길을 알 수 없는 방대함, 3. 이정표와 사람의 부재를 꼽았습니다. 코엑스몰의 초기 형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마치 죽은 것만 같은 공간. <코엑스몰>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거대하고 복잡한 곳에는 반드시 '랜드마크'가 있다.

 

 

랜드마크; 어떤 지역을 식별하는 데 목표물로서 적당한 사물

 

방대한 면적과 복잡한 골목길, 금세 길을 잃기 쉬운 거대한 도시들에는 반드시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랜드마크의 사전적 정의도 직설적입니다. 위치를 찾기에 적당한 사물이라는 뜻이에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에펠탑'이라는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랜드마크는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고, 방향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하며, 나아가 관광지로서의 기능도 있는, 도시의 필수 불가결한 공간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도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 '롯데 타워'가 있습니다. 복잡한 잠실 시내에서는 조금만 하늘을 올려다 보면 거대한 '롯데 타워'가 우뚝 서 있습니다. 

 

당시 코엑스몰의 안내도입니다.

리모델링 초기에는 우리가 코엑스몰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별마당 도서관'이 없습니다. 화질이 좋지 않아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별마당 도서관이 있는 자리에 '센트럴 플라자'라는 일종의 광장이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코엑스몰의 중심지로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입니다. 센트럴 플라자가 메인이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방사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방사형 구조로 설계된 공간은 반드시 사람들이 중심지로 이동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공간만 방사형으로 만든다고 다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 방사형 구조로 설계된 대표적 계획도시가 프랑스 파리입니다. 이미지처럼 도로가 거미줄이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의 방사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시민 및 관광객들이 중심지로 기꺼이 걸어올만한 명분이자 랜드마크, '개선문'이 우뚝 서 있습니다. 개선문과 에펠탑을 보기 위해 저 방사형 구조를 지나와 기꺼이 중심부로 가는 것입니다.

코엑스몰 역시 같은 방사형 구조로 되어 있지만, 중앙으로 가게끔 만들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센트럴 플라자>는 명분이 될 수가 없어요. 명분으로는 너무 약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자신을 노출하기를 꺼려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장벽과 문이 있고 없음입니다. 도시의 건물들에는 반드시 입구가 있습니다. 농촌의 건물들은 입구가 없는 곳이 많아요. 차량도 대충 도로 근처의 갓길이나 집 앞 공터 같은 곳에 주차하고 논과 밭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는 농촌보다 폐쇄성이 강하고, 농촌은 도시보다 개방성이 강합니다.

도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성격은 '관음증'과 얼핏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집 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대신 집 안에서는 집 밖을 한 눈에 둘러보고 싶어 합니다. 도시인들이 가진 성격입니다.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엑스몰이 리모델링되면서 바닥, 기둥, 천장, 조명이 모두 흰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현대적이고 깔끔해 보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장시간 체류하다 보면 심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밋밋하고 담백한 공간에서는 어떤 것이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게 될까요? 바로 사람입니다. 이 심심하고 밋밋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 사람이 곧 관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제가 오늘 코엑스몰을 돌아다니면서 유독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잘생기지도 않았고, 옷도 검은색 패딩에, 검은색 백팩에, 검은색 슬랙스,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서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과 다르게 코엑스몰에서 우리는 손쉽게 서로의 관찰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공간이 너무 심심하고 밋밋하기 때문입니다. 극도로 타인의 시선을 꺼려하는 도시인들의 특성상 코엑스몰의 이러한 인테리어는 커다란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리모델링 전 코엑스몰을 보면 사람 말고도 우리의 시야를 잡아끄는 것들이 길 곳곳에 있었습니다. 매장 안쪽이 아니라 길 가장자리에도 '노천 테이블'을 설치하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여러 벤치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통 민속 게임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보입니다. 기둥마다 사진이나 그림이 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습니다. 뭔 '고급화' 전략으로 인해 전부 사라지고 만 풍경들입니다. 이런 감성들이 바로 코엑스몰을 유지시켜준 것인데 말이에요. 비록 난잡하고 촌스러워보일지라도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기 때문에 코엑스몰은 '편안한'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엑스몰에 다시 사람을 끌어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제가 마지막으로 코엑스몰에 다녀왔던 게 아마 2년 전일 겁니다. 거리가 멀기도 했고, 강북에 사는데 굳이 삼성동 코엑스몰까지 가서 놀 만한 이유가 없기도 했습니다. 2년 만에 코엑스몰을 다녀오고 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 눈에 띄더라고요. 조금씩 사용자에게 사려 깊고 친숙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들이 구석구석에 엿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코엑스몰 중앙까지 이어지는 파란색 길이 새로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밟아서 색이 좀 지저분해진 걸 보면 생긴지 좀 된 모양입니다. 제가 너~무 뒷북 포스팅을 하는 건 아닌지 갑자기 민망해집니다ㅋㅋ 파란 길만 쭈욱 따라가면 별마당 도서관까지 이어집니다. 길을 만들어주는 것은 긍정적인 사용자 경험을 주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코엑스몰 곳곳을 구경하면서 길에 깔려 있는 파란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별마당 도서관'을 맞이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별마당 도서관'입니다. 이제는 코엑스몰의 완벽한 랜드마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뭔 같잖은 '센트럴 플라자'보다 훨씬 낫네요. 제가 직접 찍은 이미지 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공간에서 중심이 되는 곳, 사진을 찍기 좋은 관광지로서의 기능, 방향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이정표. 완벽한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이 모이는 '명분'이 코엑스몰에도 생긴 것입니다.

 

 

밋밋했던 공간을 어떻게든 개선해보고자 하는 코엑스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길 위에 다시 노점이 등장하면서 작은 활기를 찾았습니다. 기둥에 LED를 설치해서 화려하고 빛나는 색감의 광고들을 띄웠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시선은 사람이 아니라 광고를 향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기둥 광고가 조금은 덜어주고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광고가 너무 많아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하는데, 과거의 코엑스몰을 잘 알고 있던 저로서는 이 기둥의 존재가 생각보다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아 새하얗기만 했던 기둥을 광고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기둥에도 이정표와 코엑스몰 안내도를 삽입함으로써 긍정적인 사용자 경험에 조금은 톡톡히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들 사이사이로 파란 길이 '별마당 도서관'을 향해 쭉 뻗어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년 전에 왔던 코엑스몰의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휴, 또 한참이나 헤매겠구나. 친구 OO이는 왜 하필 하고 많은 곳 중에 코엑스몰에서 만나자고 한 거지?" 투덜거렸는데요. 오늘 다녀오면서 생각보다 달라진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썩 괜찮더라고요! 길을 잃어버리는 횟수도 줄었고, 하도 헷갈려서 중간중간 배치된 안내도를 보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덕분에 더 편안한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이런 변화라면 앞으로도 기꺼이 다녀올 생각도 듭니다.

 


여전히 개선해야 할 한계와 코엑스몰의 미래

 

그럼에도 코엑스몰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습니다. 방대한 공간 특성상 반드시 낙후되는 외곽 공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코엑스몰 리모델링 당시, 기존에 성업하고 있었던 소상공인들을 모조리 외곽으로 몰아내서 시끄러운 잡음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센트럴 플라자로 시작하는 중심부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트렌디하고 핫한 매장들을 전략적으로 채우고, 개인 자영업(네일숍, 미용실, 분식집, 도장 파주는 집 등등)을 모조리 외곽지역에 배치했습니다. 당연히 자영업 소상공인들의 매출은 대폭락 했습니다. 월세가 200만 원인데 수입이 35만 원인 매장도 있었고, 하루 매출이 9,500원인 매장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분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피해는 누가 보상할까요?

애초 예상하는 유동 인구가 일 13만명이었지만, 현재는 일 5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도 한몫했겠지만, 단점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혹평이 지배적입니다. '고급화'라는 똥고집을 이제는 조금씩 벗어던지고 사용자를 배려하기 위한 시도들을 이제라도 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앞으로 코엑스몰이 개선해나가야 할 방향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코엑스몰 자체가 또 하나의 멋진 '랜드마크'로 부상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렇게 오늘 코엑스몰의 복잡한 길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코엑스몰> 지도

  • 주소: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513 (우)06164
  • 영업시간: 매일 오전 10:30 ~ 오후 22:00
  • 대표번호: 02-6002-5300
  • 찾아오시는 길: 삼성역 6번 출구, 봉은사역 7번 출구 연결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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